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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인간 |  미술과 사회 | 미술과 자연  |  미술과 과학 | 미술과 종교

미술과 인간

    미술의 시작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비롯된다. 초기의 인류는 도구를 자연 그대로의 것이나 부분적으로 고쳐 사용해 오다가 점차로 새롭게 만들어 자기들에게 알맞은 도구로 이용하였다.  즉,  인간은 스스로 '발견한 사물'에서 자신이 '창조한사물'로 옮겨가면서 자연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자유로워졌다.  이러한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은 감수성,상상력,그리고 직관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수성이란 세계의 여러 모습에  인간의 오관을 통하여 다양하고 생생하게 보다 많이 받아 들이는 감정이며, 이러한 감수성을 통하여 인간이 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한다. 상상력은 외계의 모든 이미지를 서로 관련지어 가면서 유기적인  조화를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이다.  상상력이  창의력을 불러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반드시 창조적인 작품 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자신의 상상을 실현 시키려는 적극적인 행동과 그에 따르는 기술 능력이 따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하여 느끼거나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필요한 직관력은 어떤 지식이나 현상에 대하여 편견이나 선입견 또는 의문의 제기 없이 받아들여 즉각적 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즉, 어떠한 대상을 보았을 때 그것이 '좋다'거나 혹은 '나쁘다'라고 느끼는 것이 직관의 작용이다. 이러한 작용을 통하여 기본적인 시각적 형태와 그 것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정신적, 육체적 의미 등도 좌우되는 것이다.인간은 자연의 다른 동물과 다르게 목적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며, 사고와 의지에 의한 창조력을 가진 자유롭고 이성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감성(感性), 이성(理性), 오성(悟性)이라는 세 가지 성정(性情)이 있다. 감성은 대상으로부터 촉발되어 표상을 얻게 되는  수동적인 능력인데, 이러한 감성적 방법에 의해 인식된 것이 '미(美)'이다. 그리고 이성은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는  능력으로, 논리적이며 개념적 이다. 또한, 판단력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판단력에 의한  인식을  '선(善)'이라  하는 데,  선(善)과는 달리 '진(眞)'은 감성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가치 형성과 판단에 소요되는 마음의 능력으로 오성에 의하여 인식된다. 또한, 인간에게는 외부의 자극을 인지하는 감각(感覺)과 그것을 체계화하는 지각(知覺)이 존재한다.  이러한 감각과 지각을 통하여 경험을 하게 되며, 경험은 어떠한 의미로든 명확하고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경험을 하나의 측면에만 제한한다면 매우 짧은 기간이지만, 때로 이런 경험은 일생 동안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선명하게 또는 생생하게, 그리고 심오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기도 한다.결국, 직관력은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기존의 미술 경향을 초월하여 창조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기호' 또는 '상징'으로 이루어진 이미지 체계이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협동하여  일하자면, 그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간에 교류와 이해가 있어야한다. 즉, 의사 소통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 교환을 하려면 서로가 공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호체계가 있어야하며, 이런 기호의 의미가 의사 소통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좀더 자유롭고 넓은 행동 세계를 얻기 위하여 일시적인 기호 대신에-비록 그것이 자연과 함께 소멸해 버리더 라도-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기호의 기호'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상징 체계라고 한다. 그러므로 원시 동굴화는 그것이 그려지던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기호  또는 상징 체계인 것이다.

    인간은 삶을 통하여 어떠한 형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시, 음악, 미술, 춤 등에서 볼 수 있는 감수성이나 상상력을 통한 주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나 표현, 그리고 소통의 수단으로써 기호나 상징과 같은 방법으로 나타내는 형식이 있다. 이처럼 크게 대별되는 두 가지 형식을 현대 미술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본질의 삶의 형식과 이성적 본질의 형식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미지 제작이라는 고전적 예술의 개념과 상상력을 통한 창조로서의 근대적 예술의 개념을 오늘날 유희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현대 미술에 있어서 행동을 중요시하는 액션 페인팅이나 해프닝과 같은 장르에서 드러나는 행동의 개념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적이고 관조의 형태를 나타내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운동 변화를 함께 느끼며 유희가 진행되는 동안에 기쁨의 장 속으로 역동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창조를 촉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념 미술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의 연속과 움직이는 조각 등은 인간의 예술에 대한 이성이나 상상, 모방이나 표현이라는 전통적인 이론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회복하거나  창조하는 발전된 예술로서 나타나는 것이며, 원시 미술에 찾아질 수 있는 집단적이며 사회적인 것에 기준이 되기도 한다.이렇듯 인간은 창조적 행위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며 즐거움을 느끼며, 미적인 감상을 통하여 창조적인 삶의 방식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가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인간 삶의 경험에 생기를  주어  흥미를 느끼도록 하며, 다양하면서도 유연한 소재를 택하여 인간의 원초적이며 순수한 미적인 체험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미술과 사회

    미술의 사회적 의의를 이야기할 경우, 자칫하면 예술을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하여 사회에 미치는 외형적 현상만을 다루기 쉽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과 같이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인 것이다. 개개인의 삶의 능력이 심화 되고 화대되는 가운데 사회적 협동 작용이 생기며, 이를 통하여 사회적인 공감대로 발전된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미술은 미적 기능과 사회 교육적 효과로 인하여 사회적 의의를 지니게 된다.   또한, 미술은 단지 미적인 것뿐 아니라 아주 다양한 비미적(非美的)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창작의 가치, 정신   위생적 가치, 교육적 가치, 상업적 가치, 기념비적 찬양 가치, 물적 유용성의 가치, 역사 이해의 가치, 종교적 가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미술의 미적 가치가 높다고 해서 문화적, 사회적 기능도 커진다는 필연성은 없으므로, 미술을 미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사회가 기계화, 대중화되고 올바르지 못한 의미에서 합 리화되어 가는 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술 교육을 제시할 수도 있다.   미술은 개인의 삶을 보다 큰 사회적 삶으로 확대하거나 융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며, 미적 정서의 원리를 통하여 사회적 연대성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은 개인의 미적 의식에 기초한 개성화의 원리 내지 선천적 재능에 의할 뿐 아니라, 개인을 초월한 인간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현상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제약되는 것으로 본래부터 사회적 기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술 작품들은 그것들이 나타난 시대의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거나, 아니면 사회적 조건들의 영향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그것들이 제작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거나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어떠한 주제의 유사성에 의하여 문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그리고 종교적, 경제적 사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실제적으로 미술 작품은 사회를 묘사하거나, 이상화하든가, 아니면 사회를 위한 공공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과 사회적 상황 사이의 관계는 복잡해지고, 각각의 작품의 경우에 있어서 사회적 사실이나 경제적 사실을 나타낼 수 있다고 인정되며, 개별 작품의 기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미술에 있어서 기술적인 발전으로 예술가의 관심이 조형적 기교와 논리의 문제에만 치우치게 되어 미술에 있어서 사회와의 상호 관계의 의미를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형식에만 뚜렷한 관심을 드러내던 19세기의 예술에 비하여, 오늘날에는 예술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더욱 확대시켜 나가게 되었다. 즉, 주변 환경의 변화와 대중 문화, 과학의 발달에 따른 매체의 발전이 다양한 예술 표현을 요구하면서, 현대 미술의 사회에 대한 참여는 순수 미술을 비롯해 광고 디자인, 산업 디자인, 환경 조각 등 미술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미술과 자연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이면서도 영원한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경배하여 순응, 또는 극복하며 삶을 영위하였다. 자연(自然)의 한자어 뜻은 '스스로 그러하다'이며, 영어의 Nature는 '본래, 본질'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언어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동 ·서양의 자연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점을 나타내고 있다.

    장자(莊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를 '天地與 我竝生 而萬物 與我爲'('천지여 아병생 이만물 여아위)라 하였다.

    '하늘과 땅은 우리와 함에 더불어 존재하고 만물은 우리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다. '라는 의미인 이 말은 자연과 인간은 대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하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동양의 자연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하이데거가 지적한 대로 인간은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로서,모든 대상은 인간에 대하여 도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상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이러한 사상은 인간에게 자연이란 극복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이치를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게 하였다. 이러한 자연관의 차이는 서로 다른 자연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차이는 자연에 대한 순응 방식을 다르게 형성시켰고 문화적인 정체성도 지니게 하였다.   

    초기의 인류가 자연에 대하여 보여 준 공통적인 태도는 개념화와 추상화였다. 그 이유는 소통의 필요성 때문이었는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이러한 지적,성적 노력의 결과이며,이러한 언어를 통하여 인류는 더 깊고 널은 지식의 축적과 미적인 체험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집트나 중국의 상형 문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물의 형상으로 부터 유추된 하나하나의 형태는 모두 대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문자와 그림을 같은 뿌리로 보고 서예를 조형 활동의 하나로 발전시켰다. 미적인 태도를 통하여 자연을 추상화시키는데, 이는 대상이 지닌 형태 나 색, 움직임, 구조 등을 면밀히 파악하여 객관적인 개념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나타난 시기의 작품은 대체로 물질의 특성보다는 인간의 조형의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와 같은 표현상의 특징은 자연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라는 그리스 시대의 인본주의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인식론은 인간과 자연을 이원적으로 파악한 대표적인 서양의 사상이었다. 정교한 형태의 그리스 조각이나 정확한 투시도법으로 그려진 16세기의 회화 작품들은 모두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자연의 겉모습이나 비례, 양감 등과 같은 미적, 원리보다 기운(氣韻)이나 전신(傳神)을 중요시했던 동양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변화나 순환의 이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수묵 한 가지로도 자연의 참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인류가 고도의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모순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인간은 자연과 분리하여 생존할 수 없으며,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현대 미술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자연관은 손상된 자연에 대한 자책과 미래의 철학에 대한 탐색에서 엿볼 수 있다. 이제 자연은 작품에서의 질료가 아닌 그 자체로 형상인 환경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미술과 과학

    미술과 과학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일은, 우선 두 분야가 서로 상극적이라는 생각을  살펴보는  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미술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감성적인 작업인 반면, 과학은 합리적, 이성적인 지식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믿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력의 소산인 미술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고 가변적인 반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진리인 과학은 과학자와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가치적으로 중립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16세기의 마법과 요술의 권위자였던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는 미술가와 과학자는 같은 별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같은 존재 이지만, 미술가는 창조적이고 환상적인 성격을 지닌 반면 과학자는 이성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의 주장은 바로 '감성과 이성의 분리'라는 이분법적 발상의 이론적 뿌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미술이 과학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사고의 배경으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편견이 미술가와 과학자 모두에게 널리 퍼져 있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과 과학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이해가 필요하다. 즉, 미술과 과학은 자연을 포함한 우리들의 세계를 재현하고 해석하며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활동이다. 미술과 과학의 분화가 일어 나기 이전에 두 분야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예로, 르네상스 시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들  수  있다. 르네상스는, 미술에 있어서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중세와 결별한 '발견과 창의의 모더니즘 시기였으며, 미술가들이 과학자의 역할을 한 시기였다. 자연을 보다 합리적이고 이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가들의 탐구 의욕은 수학적인 사고와 지식이 요구되는 원근법이나 인체에 대한 생리학적인 지식으로 연결 되어지는 해부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는 모두 미술가들의 과학에 대한 공헌이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위시한 르네상스시대의 미술가들은 미술과 과학을 동일시했으며, 당대의 지도적인 인문학자들도 미술을 응용 과학으로 정의하거나, 또는 자연 철학과 수학에 포함시키기까지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빛, 색채, 인체, 거리, 움직임 등을 결정하는 것이 회화의 진정한 과학적 원칙들이라고 규정하며, 미술과 과학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원근법에 대한 연구는 갈릴레이나 코페르니쿠스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대의 미술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어 16,17세기 이후에는 미술은 일종의 지식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과 낭만주의가 성립되어 가던 18세기 이후에는 순수 미술의 등장과 작가의 주관이나 감성에 대한 강조, 순수 미학의 대두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미술을 과학 이전의, 또는 과학과는 무관한 활동으로 여기는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미술은 미학이라는 목적을 가지지만 과학은 단지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과학은 관객이 없는 반면 미술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관객이 없지는 않으며,  그리고 미술의 관객은 과거의 걸작과 현대의 작품들을 모순 없이 수용하는  반면 과학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과거의 이론을 대체하게 마련이고, 또한 미술은 과거를 보존하는 미술관이 있지만 과학에는 없으며, 미술가들은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배우지만 과학에서는 오직 과학사가들만이 예전의 과학자들을 연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목적이 자료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듯, 미술가의 목적도 풍경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며 둘 다  새로이 보는 방법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과학이 미술보다 더 진리라고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즉, 미술과 과학은 서로 공통점이 있으며, 미술에 있어서 과학처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므므로, 미술이 일종의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적인 과학자들이 비과학(非科學) 분야, 특히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갈릴레이와 같은 천문학자는 음악, 미술, 문학 등에도 재능을 보였으며 상당한 안목을 가진 미술 가였으며, 미술 평론가,  수집가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미술과 과학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하나는 미(美)를, 다른 하나는 진리(眞理)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이 두 분야는 사용하는 도구와 표현 체계는 다르지만  둘 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실재를 재현하고, 또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성과 감성,   추론과 직관 등을 통하여 각각의 과정과 매체를 통하여 그 어떤 모습을 밝혀 내고 제작하는 작업 인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이용한 현대 미술을 통하여 가장 근본적인 세계상의 변화 요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만 심취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자나 분자론이 제시하는 원자 물리학적 세계관을 작품에 반영하려는 보다 심오한 목표를 가졌었다. 숫자나 문자상의 언어로 쓰여진 과학 이론을 빛이나 색을 통한 미술이라는 언어로 옮겨 세계를 재현 하려는 작업을 시도했던 것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움직임이 정교하게 자동 제어되어지는 기계, X-레이나 현미경을 통한 미시적 시각, 망원경을 이용한 거시적 시각 등이 아무런 제약 없이 수용되고 있으며, 오디오, 비디오, 컴퓨터 등을 활용한 최첨단 과학의 기술과 이론, 상대성 원리와 같은 현대 물리학의 원리 등을 도입하여 활용한 미술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더 확대되어질 것이며, 이러한 기술적인 효과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테크놀로지 미술이 어느 정도 깊이 있게 과학의 본질을 반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술과 과학은 별개의 것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동일한 경향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미술과 종교

    종교와 예술은 그 기원을 함께한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미술이 종교와 그대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에서 미술의 원형을 발견하기란 그렇게 어렵거나 불합리한 일은 아니다. 왜냐 하면, 원시 시대의 종교적 관심은 생명 또는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주술적인 경향을 보였고, 당시의 인간의 최대 관심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필요로 하던 노동력에 관한 일이었다. 이러한 노동력의 필요성에 의하여 다산과 관련된 많은 조형물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한 조형물들은 한결같이 왜곡과 과장이 심한 추상적 표현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자 아와 외부 세계와의 친화적 감정 이입을 통한 자연주의적 표현에 의하여 극복되었다가  종교적 인간이 이룩한 종교적 예술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종교적 인간의 의식은 신앙 정신의 철저한 구현을 위해 현실 세계, 감각적 세계를 초월한 관념적인 신의 세계 내지 영혼의 세계를 상징하는 상징주의적 예술을 이룩하였다. 그들의 미술은 현실과 자연의 긍정으로 현실 세계와의 친화적 연관성 가운데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미술을 창조 하였던 고전적 인간의 경우와는 다르게 원시 시대 인간의 경우와 같이 현실 내지 자연을 부정하고, 감성을 부정하는 관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전개된다. 따라서, 이들의 미술은 신의 은총으로 영흔을 구제받고, 신의 영광을 반영하는 신앙 생활의 매개체를 근거로 한 표현으로 양식화되어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이 이집트인들의 사후 제 2세계관에 근거해서 피라미드나 신전 건축을 모태로 발전했듯이, 종교 예술은 신의 집이자 권위의 소재, 생활 전면을 지배하는 중심으로서 필연적으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건축물을 모체로 하여 회화, 조각, 공예 등 모든 조형 예술 활동으로 전개되게 되었다.  불교의 경우, 예배 대상의 봉안과 수도를 위한 일정한 장소를 필요로 하면서 건조물을 세우게 되었으며, 이렇게 세워진 사찰을 중심으로 정신적 활동과 동시에 조형 미술의 집중적 표현을 구현시켜 왔다. 법당과 탑을 중심으로 한 사찰의 건축은 건축뿐 아니라, 이 건축물을 채우는 내용물로서 불상 조각, 탱화, 사리함 등의 제작으로 조형 예술의 4대 부분인 조각, 회화, 공예 등을 고르게 발달시키는 기본이 되었던 것이다. 건축들은 그 들의 종교 생활과 미술의 직접, 간접적인 상호 작용을 찾아볼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이와 같은 기독교 사회에서 미술은, 신이라는 주체에 종속된 객체로서 그의 도구를 자처하며 발달해 왔다. 따라서, 인간적 개성이나 표정 등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재현적 요소는 희생하고 오직 종교적 감정의 초월성을 상징하는 표현을 하게 되었다. 현실을 초월한 기독교적 관념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조형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미술은 자연 관념주의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테오필루스라는 수도승은 예술가들에게 '예술가들은 어떻게든 신자들의 눈에 신의 천국이 보이도록 해야 한다. 제작을 통하여 신을 찬양해야 하고, 작품에서는 신이 경배되도록 해야 한다. '고 경고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중세 종교적인 세계관의 붕괴로 새롭게 등장한 시민 계층이 문화의 담당자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민 계층을 통한 민중 중심의 예술 활동은 자유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 경향을 나타냈었으며, 또한 이는 '인간과 세계의 발견'이라는 르네상스의 개념 속에서 전개되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은 인간에 대한 외형적이고 내면적인 탐구와 새로이 발견되는 세계에 대한 연구로 종교에 대한 관념은 자연 미약해 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근대 이후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분석적이고 자연 과학적인 태도와 신의 죽음으로부터 탄생하기 시작한 미술 장르의 확대는 한층 더 미술과 종교 의 관계를 멀리하게 되었다. 오늘날 종교적 미술에 있어서 조형 활동은 과거의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전통의 답습이지 새로운 형식의 조형 활동은 미약하다 하겠다. 우리들 마음속에 가득한 평화를 위하여 그림을 그리고 생각합시다.  그림을 종하하는 인간은 아릅답습니다.

     

 참고자료(도서)→  도서출판가나아트의 알고나면 미술박사 / 미술대전 /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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